설리화야 설리화야

소나기
2023년 06월 05일
미운 오리 새끼-큰글자+컬러링북
2023년 06월 05일

설리화야 설리화야


1992년 대구 수성교와 방천시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지금으로부터 약 삼십년 전 이야기이지만 어쩌면 현재와 맞물려 있는지도 모른다.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작가가 대구 침산초등학교로 전학을 오면서부터 이 작품의 숙명은 정해진 게 아닐까. 그게 작품 속 주 무대가 대구이며 두 지방의 사투리 구사율을 높일 수 있는 이유일뿐더러 다채로운 구성과 주제의식을 살리는 데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어떤 소설이냐고 물으면 간단하다. 순수한 러브스토리다. 하지만 그 속에 범상치 않은 작의(作意)를 숨겼다. 우선 작품의 배경이 이른바 대통령 주 산지인 TK 지역이다. 게다가 중요한 시간적 흐름 또한 대구에서 열린 제73회 전국체육대회 기간 내로 압축시킨다.
전국체육대회를 줄여서 전체(全體)라 하고 전체주의(全體主義)라는 이데올로기 즉 토탈리즘으로 둘러싸인 시대적 공간을 배경으로 선택한 또는 선택 되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해 아울러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고 군정종식, 말하자면 전체주의 척결이 모든 후보들의 캐치프레이즈였다. 이런 거대 서사 속에서 다소 파격적인 소재에서 채굴한 예쁘고 처절한 러브스토리가 바위 속 샘물처럼 흐른다.
작가는 말했다. 이미 이 작품을 끝으로 절필을 선언했으며, 옥을 다듬듯, 명품 도자기를 구워내듯 수년 동안 한 글자 한 글자 연필심에 침을 묻혀가며 써나갔다고.
전설의 꽃 설리화는 과연 다시 피어날 수 있을까. 전설로 남은 고대국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슬픔과 상실의 도시 대구로 이어지고 그 주인공들의 귀향이 종결될 즈음 여명이 밝아온다.
“돌아가입시더, 대구로!”


 
이 작품의 작의는 무엇인가. 단순한 러브스토리인가. 시대의 선택은 왜 하필 그때였을까.
작품에서 배경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할까. 먼저 이 작품의 주 무대는 대구의 수성교라는 다리이다. 물론 다리는 강을 전제로 한다. 아울러 강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수성교 밑을 흐르는 샛강의 이름은 신천이며 또 묘하게도 북쪽으로 흐른다. 이 신천이 다시 금호강(이 강의 방향도 북쪽)이라는 강에 섞인 후 마침내 저 유장한 낙동강을 따라 남해 바다로 나간다는 실제의 배경.
제목을 설리화로 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더불어 작품의 발단지로 고대국가 조문국의 수도를 설정한 것도 필시 숙고를 했을 터였다. 망국이라 해도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현재까지 자신들의 역사를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전설의 꽃 설리화는 다시 피어날 수 있을까?
흥미로운 러브스토리 속의 인간 탐색. 또 그 작은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거대서사. 삶의 무게를 공감하게 하는 디테일. 곡진한 인물들의 설정. 소설 장르의 장점을 살리려는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한 점, 파격적인 구성과 내용. 그 내용과는 다소 어긋나는 문체가 눈에 띈다. 이를테면 시를 보는 듯한 극히 서정적인 지문이 그렇다. 그리고 추리적 구성으로 흥미를 유발시키는 가하면 대사의 말맛을 제대로 살린 사투리 구사가 돋보인다. 영상미를 의식한 배경묘사와 극문학에서나 볼 수 있는 대사에 자꾸만 페이지를 넘기는 가독성까지 겸비한 작품이다.